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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종전쟁론

세계최종전쟁론

만주국을 세운 이시와라 간지의 망상이론

  • 이시와라 간지

  • 12,000원

[책소개]

전 세계가 하나로 통일되는 최종전쟁에서 최후의 승자가 되어
영원한 평화를 이루겠다는 망상을 품은 이시와라 간지,
그 실현을 위해 만주국을 세웠다!
나라를 세운 한 남자의 망상, 그 전모를 살펴보자.

세계최종전쟁론은 간단하게 말해, 먼저 세계가 두 개의 강대국 그룹으로 재편된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으로 1940년대와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의 체공시간을 가진 항공기와 한 발을 투하했을 때 도시가 사라질 위력을 가진 초월적인 무기가 완성된다. 그러면 이런 강력한 무기를 가진 두 강대국이 세계통일을 위한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는 이론이다. 이시와라 간지는 이 세계최종전쟁에 돌입할 두 강대국 그룹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연합, 그리고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연맹이 되리라 예측하고, 이 최종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망상에 빠졌다. 본문이 바로 이 세계최종전쟁론을 설명하는 이시와라의 글이다. 본문에는 이시와라 간지에게 큰 영향을 준 국주회의 지도자 다나카 지가쿠를 비롯하여 국주회에 소속된 문화계 인물들과 이시와라 간지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면서 현대일본문화와 서브컬처에 끼친 영향에 대해 논했다.

[저자소개]

이시와라 간지(저)

1889년생, 1945년 사망. 일본육군 중장, 리츠메이칸 대학 교수, 종교인. 남만주철도 폭파 사건을 조작한 만주사변의 주범으로 만주국 건국을 주도했다. 이후 자신의 망상인 최종전쟁에 돌입하기에는 준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 확전을 주장한 도조 히데키에 반대하다 예편당했다. 이후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국방과학을 가르치다 평론가가 되었으며, 전후 도쿄 전범재판에서 증인으로 활동하고 죽었다.

선정우(역)

만화·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 1995년 국내 매체에 기고를 시작했고, 2002년부터는 요미우리신문, [유리이카] 등 일본매체에서 한국 문화를 소개해왔다. 저서 [슈퍼 로봇의 혼], 번역서 [스토리 메이커], [캐릭터 메이커], [이야기 체조], [이야기의 명제](오쓰카 에이지) 등. 최근 대담집 [오쓰카 에이지: 순문학의 죽음·오타쿠·스토리텔링을 말하다] 출간.

[목차]

1. 최종전쟁론
전쟁사를 통해 전쟁과 역사의 발전에 대해 설명한 뒤, 앞으로 일어나게 될 최종전쟁과 세계의 통일, 이를 이루기 위한 쇼와 유신에 대해 설명한다. 그런 다음 불교(일련종에서 말하는)의 예언을 통해 종교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고 최종전쟁과 그 준비에 대해 마무리한다.

2. 질의응답
세계최종전쟁론에 대해 강의하던 당시(1940년), 자신이 받은 15개의 문답을 정리하여 그 내용을 소개하였다. 이 질의응답은 최종전쟁과 불교적 예언의 당위성, 준비해야 할 일 등에 대해 설명한다.

[보론] 인간 이시와라 간지
이시와라 간지의 일생을 설명한다.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이시와라가 살아왔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면서, 이시와라가 어떻게 그런 망상을 하게 되었는지, 배경을 알아본다.

[보론] 이시와라 간지와 현대 일본 문화
이시와라 간지와 현대 일본 문화의 연결고리를 찾아보는 해설편이다. 이시와라 간지에게 큰 영향을 끼친 스승, 다나카 지가쿠와 국주회, 그리고 그 소속된 인물들이 현대 일본문화와 서브컬쳐계에 끼치고 있는 영향, 관련된 작품 등을 설명함으로써 이시와라 간지의 사상이 어떻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출판사 서평]

만주국을 세운 일본육군 희대의 전략가 이시와라 간지,
그는 무엇 때문에 한 나라를 세웠을까?
이시와라 간지가 가졌던 두려움과 희망, 그 전모를 파헤친다!

러일전쟁 이후 승승장구한 덕에 자신들을 과대평가하며 미쳐가던 일본 육군, 그 와중에서 조금 다른 방향으로 미친 한 명의 전략가가 있었다. 곧 닥쳐올 양 대국이 맞붙는 최후의 대전쟁과 그 전쟁의 승리자가 영원한 평화를 일구는 새로운 질서의 주인이 되리라는 그의 망상.

만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망상이지만, 이 사람은 달랐다!
일본을 최종전쟁에서 맞붙을 양 대국 중 하나로 만들겠다던 이시와라 간지는 망상 끝에 만주사변을 일으켰다! 이렇게 세워진 만주국, 이시와라는 이 만주국을 최종전쟁에서 일본의 가장 든든한 우방으로 키우려 했다. 하지만 폭주하기 시작한 군국주의라는 열차는 이시와라 간지의 뜻과는 반대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고, 결국 패망하고 마는데…
나라를 세운 한 남자의 망상, 그 전모가 여기 있다!

이시와라 간지는 누구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제국주의 시대 일본 육군이 미쳤다는 사실을 잘 안다. 이시와라 간지는 일반적으로 전쟁과 권력에 미친 일본 육군에서 독특하게도 다른 방향으로 미친 인물이다. 이시와라 간지는 일본 육군사관학교 6등 졸업, 육군대학 2등 수료 등 완벽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을 자랑한 일본 육군에서도 기대 받던 엘리트 군인이었다.

하지만 이시와라는 불교계의 이단 종파인 일련종에 심취하여, 최종전쟁을 통해 영원한 세계평화를 이루는 길이 열린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시와라는 관동군 참모로 재직할 당시, 만주국을 세울 계획을 수립하고 만주사변을 일으켜 건국을 실현했다. 이시와라는 자신이 건국을 주도한 만주국을 일본과 동등한 권리를 가진 동맹국이자 미합중국에 대응하는 만주합중국으로 키워내려 했다. 그래서 자신이 망상한 최종전쟁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연합에 맞설 동아시아 연맹의 한 축으로 삼으려던 이상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만주국을 중국 침략의 발판이자 병참기지로 만들려던 일본 군부가 판단하기에 이런 이시와라의 이상은 거치적거리는 걸림돌에 불과했다.

이시와라는 본국으로 귀환당했지만 임무의 성공적인 수행과 2.26 반란 진압 등의 공로로 승진했다. 하지만 당장 확전을 주장하는 군부를 향해 자신이 망상하던 최종전쟁의 때가 되지 않았으므로 확전해서는 안 된다며 대립하다 참모본부에서도 밀려났다. 그리고 다시 관동군으로 돌아가서 만주국을 독립국가로 만들려 시도하다 확전파인 도조 히데키 일파에 밀려 다시 한직으로 좌천당하고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예편당하고 말았다.

이후 이시와라는 대학교수, 평론가로 활동하며 전쟁을 반대하고, 도조 히데키 암살미수 등에 연루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갈 무렵에는 일본이 더 이상 최종전쟁의 주역이 되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는 최종전쟁 없이 영구평화를 이루기 위해 일본이 노력해야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은 전후 일본 우익의 사상적 바탕이 되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 도쿄 전범재판에서 도조의 전쟁범죄 행위에 대해 증인으로 활동하다 병세가 악화되어 1949년에 죽었다.

이시와라 간지와 현대 일본 문화
그렇다면 이시와라 간지와 현대문화는 어떤 연관관계가 있을까?
이시와라 간지는 세계최종전쟁론에서 알 수 있듯이, 마치 만화나 소설 속에서 등장할 듯한 이런 이론을 직접 만들고, 실현하기 위해 인생을 걸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시와라 간지의 이론은 일본 불교의 종파인 일련종과 깊은 관계가 있는데, 이시와라는 일련종에서도 극단적인 종파인 국주회에 소속된 다른 문화계 인사들과 함께 현대 일본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본문에서는 이시와라 간지에게 큰 영향을 준 국주회의 지도자, 다나카 지가쿠와 이시와라 간지의 관계, 그리고 국주회에 소속된 문화계 인물들과 이시와라 간지 사이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면서 현대 일본문화와 서브컬처에 끼친 영향에 대해 논했다. 이를 통해 세계최종전쟁론과 이시와라 간지가 현대 일본 문화에 끼친 영향에 대해 느낄 수 있다.